「마그사리온 마그사리온―― 너는 왜 마그사리온이냐. 마음에 안들어, 인정 못해, 나와 싸운다면 내가 돼랏!」
「악으로 떨어져라! 너도 마왕이라는 것이 되는 거다!」
「어떻게?」
「알겠냐!」
「말해봐라 마그사리온, 넌 전추를 어떻게 깰거지!?」
「글쎄, 때가 오지 않으면 모르겠군. 그래도 잘해보마」
「어떻게?」
「알겠냐」
마사다 타카시의 웹소설. 신좌만상 시리즈의 1천시대 이야기. 예전 같았으면 이렇게 소개했겠지만, 이제는 좌천된 디에스이레 판테온의 이야기 중 하나라고 해야겠죠.
블로그를 옮긴 후로 마사다 썰을 푸는 것은 처음이라서 어디부터 얘기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디에스이레 애니화, 좆바게화라는 멍청한 짓을 거듭하고 결국 라이트가 도산. 좌절하던 마사다, 웹소설로 부활! 은 무슨... 결국 예전부터 계속 지적했던 신좌만상 시리즈에 대한 집착, 정확히는 디에스이레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 머머리(라이트 싸장놈)와 마사다들의 패배입니다. 여튼 흑백의 아베스타는 우려했던 문제점만이 드러난 작품.
흑백의 아베스타는 신좌교대극이라는 커다란 무대를 조명하기 위해 쓰여진 도구에 불과한 이야기라는 인상이 더 강합니다. 나쁜 의미로 말하자면 흑백의 아베스타만의 매력이 느껴지지 않아요. 흑백의 아베스타의 모든 이야기는 결국 0의 시대에 반격하기 위한 빌드업이라는 것이 작품 막판에 드러납니다. 2천이 되는 무참마저 반격의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서술까지 해놓습니다. 원래 신좌 시리즈에서 볼 수 있었던 그 시대 안에서만 존나게 치고 박고 서로 뜨겁던 활극을 흑백의 아베스타에서 느낄 수 없었습니다. 물론 이건 따로 떼어놓고 봐도 작품 자체가 애매해서 그런 이유도 있습니다.
애당초 흑백의 아베스타는 요즘 유행하는 좆같은 용사마왕+좆세계 장르이기도 해서, 보고 있자니 뭔가 불편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놈의 용사마왕이라는 이야기들은 대체 왜 용사가 지 목숨 걸고 마왕과 싸워야하는지, 왜 마왕이라는 존재가 있는지 명확한 이유같은 게 없습니다. 요즘은 이런저런 구실같은 걸 만드는 작품도 꽤 보이지만 그래봤자 결국 용사마왕을 좀 더 재밌게 하기 위한 임시방편에 불과합니다. 물론 그냥 정통의 선악 구도를 만들고 싶다고 하면 할말 없지만, 그렇다고 해도 굳이 마왕용사라는 직함을 달아주거나 좆세계 판타지물 세계관까지 건너가서 쌈박질 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흑백의 아베스타의 세계관에 해당하는 1천 역시 매우 작위적인 용사마왕 세계관입니다. 그래도 다른 용사마왕물보다 거부감은 적었던 이유는 등장인물들 역시 인위적 세계관에 대하여 의문을 품고 있으며 결국 그걸 박살내고자 했습니다. 사실 진아의 패도 때문에 작위적 세계관이 만들어진 것이니, 오히려 마사다도 용사마왕의 좆같음은 잘 이해하고 있는 듯 하여 그점에서는 불만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유행 따라간 건 욕 좀 먹자.
흑백의 아베스타의 설정들이 작위적으로 불편하다고 느낀 점은 사실 용사마왕 설정보다는 몇몇 캐릭터들의 능력 때문입니다. 흑백의 아베스타는 원래 '게임' 판테온에서 쓸 이야기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인지 게임을 위해 만들어진 능력들이 몇개 보입니다. 받은 데미지만큼 공격력이 강해진다, 요일마다 달라지는 7가지 능력이 특히 그렇죠. 이 능력들이 작품 내에서 딱히 재밌게 쓰인 것도 아니라서 괜히 이상한 세계관을 부각시키는 역할밖에 못했습니다. 그리고 진짜 심했던 것은 템으로 싸우는거. 이거 진짜 별로임.
신좌만상 시리즈는 신들의 교대극입니다. 그래서 좌에 앉은 신의 패도에 따라서 세계의 모습이 달라지기 때문에 신들이나 시대에 대해서
설정놀음 하기 좋은 시리즈이기도 합니다. 대부분 중2게임이 그러하듯 말이죠. 그런데 까고 말해서 전 설정놀음엔 관심이 없습니다. 내가
보고싶은 마사다의 글은 캐릭터들의 뜨거운 일생이지 신좌 시스템이 어쩌고 신들이 어쩌고 하는 딸딸이 놀음이 아닙니다. 이번 작품의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어차피 이 소설을 보는 놈년들은 이미 디에스든 뭐든 신좌만상을 충분히 접한 독자가 대부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사다도 흑백의 아베스타가 신좌 교대극이라는 점을 소설 곳곳에서 어필하면서 스토리를 전개합니다. 이 덕분에 흑백의 아베스타만의 스토리는 텅텅 빈채로 신좌만상 이야기, 그러니까 판테온의 이야기를 위해서 스토리가 진행되었고, 완결은 더더욱 판테온을 위한 완결이 됩니다. 라스보스 진아전도 전투는 뒷전이고 서로 패도가 어쩌니 저쩌니... 물론 다른 신좌 작품도 비슷한 이야기가 오고가지만 그래도 그 작품 내에서의 스토리를 완결시키기 위한 방향을 잡고 있었다는 점에서 확실히 다릅니다.
마사다의 장기는 설정이 재밌는 세계관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뜨겁고 극악무도한 캐릭터들을 만들어서 그들의 이야기를 작품 속에서 멋들어지게 완결내는 능력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 장기를 살리지 못하고 불충분한 서사가 많았습니다. 캐릭터들의 갈망 속의 진짜 갈망도 평소라면 좀 더 세련된 형태로 잘 썼을 것이지만 이번에는 뭔가 어거지란 느낌도 강해요. 캐릭터의 서사 속에서 진짜 갈망을 잘 녹여냈다기보단, 이런 진짜 갈망이 있으면 재밌을거 같다는 낙관으로 거기서부터 캐릭터를 끼워맞춰서 만들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애당초 그 진짜 갈망조차도 너무 오버했다는 느낌이 확 들죠. 마사다가 정말 잘 쓰는 서사는 딴게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법한 마코토부터 시작해서 그 캐릭터를 완결시키는 방식입니다. 살고싶다, 니들 존나 비꼬면서 놀리고 싶은데 실은 그냥 빡쳐서 그렇다, 누구한테도 접하고 싶지 않지만 실은 안아줬음 좋겠다, 니가 그렇게 생각하면 그게 니새끼한텐 진실이겠지 등등등 뭐 이런거요.
그리고 계율. 디에스로 치자면 갈망, 전신관 시리즈로 치면 마코토에 해당하는 그것. 결국 캐릭터의 인생을 담은 능력이라는 점은
언제나와 변함없습니다. 그런데 이 계율이 별로 뜨겁지 않습니다. 대체 이 캐릭터가 왜 이런 계율을 가지고 있어야하는지 납득이 안가는
계율도 꽤 있었고, 계율을 여러개 만다는 것도, 파계도, 리스크도 그냥 다 쉬워서 캐릭터들의 마코토를 느끼기가 어려웠습니다. 사실
이부분은 계율의 문제도 있지만 지금까지의 마사다와 다르게 캐릭터의 서사를 깊게 못한 이유도 있죠.
마사다의 약점으로 항상 지적되었던 점은 바로 주인공과 그 동료들이 구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반대로 마사다의 강점으로 지목되는 점은 악역의 캐릭성이 뛰어나다는 것. 사실 이 둘을 양립하기가 굉장히 어렵긴 하죠. 악역을 먼저 만들어놓고 주인공들을 이용해서 악역들을 완결시키는 전개가 특기였던 마사다가 이번 작품에서는 반대방향으로 비슷한 시도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바로 주인공을 완결시키기 위해 악역들 포함 다른 캐릭터들을 이용하는 전개. 하지만 본인이 완성하고 싶은 캐릭터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기 껄끄러웠는지, 서브주인공인 퀸을 만들어서 이년의 시점으로 주인공을 서술하는 요상한 구성을 취합니다. 마그사리온의 비밀을 감추고 싶은 이유도 있었겠지만, 이렇게 되면 결국 평소와 다름없는 마사다ㅋㅋㅋ. 덕분에 마사다 역사 최초로 주인공이 가장 인기있는 작품입니다.
근데 이런 구성이나 설정의 문제점은 제쳐두고 그냥 평소의 마사다력이 부족했습니다. 그 극악무도한 악역들은 어디가고 이번 악역들은 마사다 기준 매우 소프트한 악역들. 거 마사다 본인이 밝히길, 라이트가 좆망하고 힘든 시기에 격려문자 받고 정화됐다고 합니다....... 뭐 어차피 인간 변하기 쉽지 않으니까 다음부턴 우리가 아는 마사다로 돌아오겠죠.
그래도 작품 내에서 재밌던 파트 2개를 골라보자면 프레데리카1차전과 바흐라반전. 프레데리카1차전은 주인공들이 악역들한테 신나게 털리는, 평소의 체험판 클라이막스의 딱 그느낌이라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바흐라반전은 이 작품뿐만 아니라 마사다 작품 통틀어서도 좋은 에피소드 중 하나였습니다. 더럽게 무식하게 생긴 바흐라반과 여기서 각성하게 되는 마그사리온의 뜨거운 호모배틀은 꼭 게임판으로 다시 보고싶네요. 게임판도 나온다고 합니다. 여튼 바흐라반이 찐히로인.
어찌됐든 다음 작품은 0의 시대 <사상지평선 아디트야>. 저는 스페이스 오페라를 안좋아하는데 이걸 또 봐야하네...... 딱히 0 애들이 엄청 외도일 거 같지도 않고.
요 몇년간 계속 말했습니다. 마사다는 신좌만상을 이제 그만 놔주고 완전신작을 써야한다고. 전신관 시리즈만 봐도 디에스보다 훨씬 잘 만들었는데 굳이 다시 회귀해서 신좌만상을 다 쓰려고 하냐. 이게 다 판테온 때문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