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물어보겠는데, 네놈이 자결한다면
그래서 뭐가 어떻게 된다는거지」
「죽으면 저쪽에서 가슴을 펴고 동기와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네놈은 동기와 만나서 자랑하기 위해 죽는 건가?
하지만 만약 만나지 못한다면 어쩔거지」
「만나지 못할 리 없습니다!」
「Tautology. 경사스러운 머리네요.
잘 교육되어 있지만 신흥종교나 다를 바 없군요.
폐쇄집단에서 벗어나면 오래 못 버틸 관념입니다」
08코노미스 2위였던 야나기 코지의 단편집이 원작. 일단 장르는 미스터리 스파이 소설입니다. 사실 야나기 작품을 한번도 읽어본 적 없어서 이 양반 작풍이라든가 조커게임 원작이 어떤 소설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기대했던 바와는 다른 방향의 애니였다는 사실입니다.
PV부터 긴박한 스파이물 냄새를 풀풀 풍기길래 실제로도 꽤 긴장감 타는 그런 스파이물일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스파이물이라기보다는 추리물에 가까운 장르. 이런저런 사건을 보여준 뒤 마지막에 가서 사실은 이러이러한 트릭이었다는 추리장르의 전형적인 전개로 진행합니다. 급박한 상황에서 스파이들이 위기를 어떻게 해쳐나가고 속고 속이는 스파이장르 본연의 재미는 없었다 이겁니다.
이런 작풍이 된 이유는 첫째, 옴니버스 형식이기 때문입니다. 원작 자체가 단편집이기 때문에 애니 역시 당연히 옴니버스 스타일로 매화마다 다른 이야기를 보여주게 됩니다. 따라서 큰 줄기가 있는 스토리가 없습니다. 단편집이라고 해서 큰 스토리가 없는 플롯은 아니지만 적어도 조커게임은 매편마다 주인공을 할당해서 하나의 이야기만을 풀어나갑니다. 사실 전 후반부로 가면서 어떤 세력과 대립하게 되든지 전황이 크게 바뀌고 D기관에 위기가 닥쳐오든지 등등 해서 스파이들이 조금씩 죽어가는 그런 전개를 기대했거든요.
둘째, D기관 스파이들의 능력을 띄워주기만 해서 위기감이 안느껴졌던 이유가 컸습니다. 이것 역시 추리장르의 특성을 따라간 탓이 크죠. 12화까지 거의 모든 D기관 스파이들은 위기 상황에서도 별 타격 없이 술술 해결해나갑니다. 마치 추리장르의 탐정들이 마지막에 사건을 당연한듯 술술 풀듯이 말이죠. 결국 D기관 스파이들의 압도적인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서 긴장감 있는 전개가 희생되었습니다.
셋째, D기관의 모토인 '죽이지마라, 죽지마라' 덕분에 서로의 죽음이 최소화 되면서 얌전한 전개가 되어버렸습니다. 뭐 결국 한명이 죽긴 합니다만 그냥 사고사였고... 그래도 D기관이 전부 민간인집단이 되면서 군인과의 차별성을 보여주는 모습은 볼만했습니다.
여튼 이런 스타일 덕분에 제가 기대했던 긴장감 쩌는 스파이물은 아니게 되어버렸습니다만 다른 방향으로 즐겼다면 꽤 볼만한 작품이 되었을거라 생각합니다. 하드보일드한 분위기를 즐긴다든가 추리장르로서 즐긴다든가(사실 추리물로서도 애매한 레벨입니다만) 잘생긴 꼬츄들을 구경한다든가 말이죠.
그래도 재밌었던 에피소드를 뽑아본다면 로빈슨, 아시아 익스프레스, 더블 조커, 추적 이 4개 정도. 특히 로빈슨은 스파이(카미나가)가 구속 됨으로써 그래도 가장 긴장감 있는 에피소드였다고 생각합니다. 뭣보다 적이었던 우리 영구의 웃긴 얼굴이 대단했고. 더블 조커는 드디어 대립하는 조직(카제기관)이 나타나면서 오오 이제야 본편 들어가는건가! 했던 기대를 1화만에 카제기관이 털리면서 시무룩 했지만.
다른 면으로는 칭찬할 곳이 꽤 많습니다. 특히 작화가 매우 훌륭했습니다. 작붕다운 작붕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고 주인공들과 엑스트라, 배경에 이르기까지 하드보일드 하면서도 안정감있게 멋나는 작화였습니다. 다만 현실감을 살리기 위해서였는지 주인공들의 머리색과 생김새가 다 비슷비슷해서 구분이 힘들었다는게 문제. 이왕 애니 장르로 넘어온거 적어도 주인공들 생김새만은 각자 개성있게 그리는게 어떨까 싶었습니다.
샘김새뿐만 아니라 성격마저 다 비슷비슷한 와중에도 괜찮았던 캐릭터를 뽑아보면 유우키중령과 미요시, 하타노. 유우키중령은 그냥 멋나는 양반으로 만들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미요시와 하타노는 D기관 내에서도 성격이 까칠하게 띠꺼운 애들이라 좋았습니다. 미요시는 비주얼도 제일 괜찮아서 제법 맘에 들었던 캐릭터인데 아쉽게도 혼자 뒈짖해버립니다(시간 순서대로 에피소드를 배치하지 않아서 막화에선 살아있더라구요). 사실 하타노는 별 기억에 안남아있다가 막화에서 오다기리한테 시비 터는 모습이 재수없게 섹시해서 마음에 든겁니다만.
브금도 적당히 쓸만했던 편인데 특히 엔딩곡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웃긴건 엔딩영상만 보면 다들 긴장감 쩌는 상황에 처할 거 같은데 정작 그렇지 않았다는거지...
결국 퀄리티 자체는 굉장했습니다만 스파이물로서의 재미는 기대하기 어려운 애니입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