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스퀴라다!」
「짐승에 불과한 너에게 우리가 내려준 고마운 이름을 불손하게도 부정하는거냐?」
「우리는 짐승도, 너희의 노예도 아니다!」
「짐승이 아니면 넌 대체 뭡니까?」
「우리들은 인간이다!」
1000페이지의 분량 때문에 여태 미루다가 얼추 일주일 투자해서 다봤습니다. 기시 유스케의 작품 중에서 악의 교전, 검은집 다음 정도로 볼만했네요.
먼저 가장 칭찬하고 싶은 곳은 기시 유스케의 빼어난 상상력입니다. 미래세계의 다양한 생물군종을 자세히 묘사하는 걸 보면 이 양반의 능력에 다시 놀라게 됩니다. 마지막 문구가 '상상력이야말로 모든 것을 바꾼다'임을 볼 때 어쩌면 이 작품은 인간의 죄, 생물의 본능보다 상상력이 진짜 주제가 아닐까 합니다. 원래 기시유스케의 강점은 싸이코패스 묘사, 쫄깃한 클라이막스, 그럴듯하게 다양한 살인방법, 뛰어난 배경지식 등입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은 배경지식이겠죠. 원래 심리학 쪽으로 많이 아는 양반이라고 생각했지만 생물에 대해서 이 정도의 상상력을 펼친걸 보면 한 작품을 위해 대단한 공부를 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1000페이지나 되다보니 재미가 들쭉날쭉합니다. 재밌었던 파트를 골라보면 유사미노시로가 인간의 역사를 주구장창 늘어놓는 파트, 외래종 바케네즈미와의 전쟁, 도미코가 회상하는 악귀사건, 바케네즈미 대 인간이었습니다. 인간의 역사와 악귀사건의 공통점은 역시 기시 유스케의 최대의 특기인 싸이코패스, 살해방법에 대한 묘사가 잘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주력이 세상에 나타난 후 미치광이 왕들의 잔학무도한 폭정, 악귀가 인간들을 몰아넣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아 역시 기시 유스케의 책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죠.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클라이막스였던 인간 대 바케네즈미보다 외래종과의 전쟁이 더 쫄깃하게 재밌었습니다. 아직은 어린 주인공들이 주력마저 잃은 상태로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이었던만큼 제법 쫄깃쫄깃함.
캐릭터는 야코마루(스퀴라)의 매력이 제일 빛났습니다. 바케네즈미란 천한 생물임에도 그 지능에서 나오는 전략은 인간들을 압도했고, 인간의 책들을 공부하면서 동족의 해방을 위해 치밀한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던 점, 승리를 위해서라면 그 동포의 목숨마저 전략의 일종으로 취급하고 가끔은 스스로도 비굴해질 수 있는 군사형 캐릭터. 법정에서 외치는 발악과 최후에 드러나는 진실이 맞물리면서 충격을 받은 사키가, 그럼에도 야코마루를 편히 보내주는 장면에서 괴사기구가 발동하지 않는 단순한 장면도 좋았습니다.
결국 긴 분량 덕에 지루한 파트가 몇군데 있다는 것 외엔 딱히 지적할 부분이 없지만 굳이 따지면 사키가 강한 인간인지 잘 모르겠다는 점과, 슌의 활약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사토루와 사키의 마음 속에서 그가 그렇게 큰 존재였는지 잘 와닿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뭐 이런 점만 제외하면 뛰어난 작품임이 확실합니다. 그래도 하스미의 캐릭터와 압도적인 재미로 밀어붙이는 악의교전을 뛰어넘기는 무리이며, 검은집의 쫄깃함을 생각하면 기시 유스케 책 중에서는 3번째로 치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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