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의심하고 봐야 해.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지만 사람을 의심한다는 것은 즉, 그 인간을 알려는 행위라고.
『믿는다』. 그 행위는 틀림없이 숭고해……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라는 이름 하에 하는 행위는 사실, 타인을 알려는 노력의 포기.
그것은 결코 『믿는다』 가 아니라…… 무관심.
무관심은 의심보다 더욱 비열한 행위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어.
나는 옛날에 어느 거대한 다단계 회사를 무너뜨릴 때, 그 안에서 여러 악독한 사람들을 봤어.
하지만 다단게에서 가장 고약한 것은――
좋은 일을 한다고 착각하며, 그 결과 남을 속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것.
그 자들은 남을 속인다는 자각이 전혀 없어.
왜냐면 그들은 자기 때문에 상대가 얼마나 괴로워하게 될지 상상하기를 외면하니까.
완벽한 사고정지. 무관심 상태의 극치지.
의심은 결코 『악』이 아니야. 진정한 『악』은―― 타인에게 무관심해지는 거지.
의심해야 해. 의심하고 의심해서 그 마음 속을 응시하는 거야」
「이봐 요코야, 『魏』와 『倭』의 한자는 참으로 흥미롭다 생각하지 않나?
저 한자들을 자세히 봐. 둘 다 『委』를 가지고 있는데, 다시 한번 한자를 자세히 보면……
『魏』는 『악마에게 신뢰받다』라는 뜻이 되고, 『倭』는 『인간에게 신뢰받다』 라는 뜻이 되지.
하하! 우연이라고 해도 꽤 아이러니 아닌가?
자 그럼, 『악마가 믿는 나라』와 『인간이 믿는 나라』,
최후에 누가 웃으리라 생각하나, 요코야」
카이타니 시노부의 만화. 한국에서는 카이타니의 인지도가 그렇게 높지 않은 편이지만 꽤 굵직한 경력을 자랑하는 양반입니다. 하긴 저도 라이어게임 말고는 원게임 밖에 안봤네요.
심리전을 가장한 그냥 두뇌배틀 만화. 제목처럼 거짓말을 누가누가 더 잘하는지 싸우는 게임을 하면서 돈 따먹는 내용입니다. 도박묵시룩 카이지같은 경우 좀 더 심리전에 치중하면서 간단한 전략들이 나오는 반면 라이어게임은 더 치밀한 전략들을 구사합니다. 그리고 사람들 간의 연결-일종의 정치질을 전략의 하나로 구사한다는 것도 좋죠. 여태 본 머가리 굴리는 만화 중에서 제일 퀄리티가 높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완결나기 전에 단행본으로 찔끔찔끔 보게 되면 그 사이에 게임룰이나 전략들을 까먹는 수가 있습니다. 실제로 제가 그랬고. 그러니 아예 한 게임이 끝날 때마다 몰아보는걸 추천하지만 이제 완결났으니 아무래도 상관없겠네요.
덕분에 완결까지 했던 게임들이 전부 명확히 기억 나는건 아니지만 제일 재밌는 게임은 의자뺏기 게임이었습니다. 전 추리소설을 읽을 때 가장 이상적인 트릭은 누구나 금방 알 수 있는 심플한 아이디어면서 허를 찌를 수 있는 트릭이라고 생각합니다. 추리장르는 아니지만 비슷한 생각을 라이어게임에 적용해보면, 의자뺏기게임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심플한 게임이지만 재밌는 전략들이 이것저것 튀어나오니 재밌었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아키야마가 보여준 요코야 봉쇄 전략은 의자뺏기게임 룰의 허를 찌르는 굉장한 전략이었으며 의외의 승자가 탄생하는 결말까지 완벽했습니다. 아키야마와 요코야의 라이벌전으로 진행되던 라이어게임이 하리모토가 참전하면서 삼파전으로 흘러가는 것도 즐거웠구요.
다른 게임들도 거의 다 재밌긴 했지만 아쉽게도 최종전인 사국지는 좀 애매했습니다. 아키야마와 요코야가 처음부터 패배전략을 쓰다보니 긴장감이 확 떨어진 느낌입니다. 이건 사실 최종전에서 '사람을 믿는다'는 주제를 녹여내기 위한 것도 있지만 솔직히 그 과정도 썩 와닿지 못했습니다. 19권까지 오면서 축적된 사람들의 신뢰가 귀결됐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최종전에서 사람들의 묘사가 턱없이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국지 룰의 빈틈은 솔직히 겜 만들면서 그정도도 생각 못했겠나 싶음ㅋㅋㅋㅋㅋ 엔딩 내려고 어거지로 만든 게임. 사무국이 패배하는 과정은 단행본에서 좀 보충되긴 했습니다.
주인공 아키야마는 거의 무적. 좋은 대학 나오고 심리학을 공부했다고는 하는데 그것만으로 거의 모든 캐릭터들을 자기 손바닥 위에 올려놓는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건가... 아니 애당초 전략들 자체가 심리전 이전에 그냥 머가리가 짱짱 좋아서 나오는 것들ㅋㅋㅋ 라이어게임에서 조금 아쉬운 점은 아키야마가 궁지에 몰리는 장면을 보고 싶었다는 겁니다. 사실 라이벌 요코야랑 대등하다고는 묘사되지만 항상 아키야마 생각대로 흘러가는 걸 보면 결국 작품 내 최강인 건 확실. 얘가 필승법이 있다고 하면 진짜 다 필승이 됨 ㅋㅋ
요코야 캐릭터도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지배자와 피지배자에 대한 사상, 뛰어난 머가리, 히틀러를 향한 존경과 그의 말년에 대한 혐오, 그러면서도 결국 아버지의 뒤를 쫓을 뿐인 열등감 등등 라이어게임에서 캐릭터가 가장 잘 잡혀있습니다. 연재분에서 마지막에 요코야의 심경변화가 제대로 묘사되지 않아서 허탈했지만 단행본에서는 제대로 나와서 안심했습니다. 아 그리고 허군날 쥐새끼 만지작거리고 있는 모습이나 눈썹 없는 올빽머리 등등 와꾸도 재밌음.
히로인 나오가 라이어게임의 대극에 위치하는, 무한히 사람을 믿는 멍청한 여자라는 인물 설정도 쓸만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이 만화의 최종주제를 가리키는 인물이기도 하고 주인공인 아키야마가 사람을 믿게 만드는 인물이라는 점, 요코야 입장에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인물 등등 전략같은 건 전혀 못짜는 아무 도움 안되는 여편네지만 이 만화에서 제일 중요한 캐릭터입니다.
문제는 다른 캐릭터들은 몇명 뺴면 거의 제대로 된 묘사는 이루어지지 않고 그냥 멍청이들로만 나온다는 게 좀... 아 그리고 설명충 딜러들 웃김 ㅋㅋㅋㅋㅋㅋㅋ
엔딩이 진짜 허무해서 막판에 점수를 까먹긴 했습니다만 여튼 정말 재밌게 본 만화. 드라마는 옛날에 1기를 봤지만 2기와 영화판은 언제 다 볼지 모르겠네요. 엔딩은 오히려 원작보다 낫다더만. 그러고보니 한국에서도 리메이크한 드라마로 나왔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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