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듣게, 세키구치군. 이 세상에는 일어나야 할 일만 일어나고, 있어야 할 것만 있는 법일세」
「요괴나 도깨비 ――괴이란 애초에 이해가 불가능한 경우를 이해하기 위한 설명으로 생긴 걸세. 말하자면 과학과 같은 역할을 갖고 있는 셈이지. 그 괴이를 과학적으로 고찰한다는 것은 난센스가 아닌가. 설명기능 자체를 다른 설명기능을 이용해 설명하다니 어리석고 촌스러운 짓일세. 소금에 간장을 뿌려 먹는 거나 마찬가지야.
과학과 괴이는 본래 서로를 보충하는 일은 있어도 반발하는 대상은 아닐세. 하지만 그러면서도 절대로 융합되지도 않는 거지. 하지만 지금은 서로 반발하는 것처럼 오해하고 있어. 심령과학은 그 오해 위에 성립하는 것 같은 구석이 있고, 게다가 융합되지 않는 것을 통합하려고까지 하고 있단 말일세. 사상누각, 지붕 위에 지붕을 짓는 거지」
「속박 없이 자유는 없어. 다시 말해서 우리가 없으면 우리에서 나갈 수 없네. 우리에서 나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우선 우리를 만들어야 하는 걸세」
교고쿠도 시리즈 4탄. 산지는 7년쯤 되었지만 분량이 분량이다 보니까 이제야 다 읽었습니다. 보는 내내 느낀 건 불교판 장미의 이름. 4탄까지 비교해보면 망량의상자>우부메의여름>광골의꿈>>철서의우리
솔직히 재미가 있었냐고 하면 매우 미묘합니다. 미스테리 서적치고 분량이 너무 많은 데다가 하루종일 불교 썰을 보고 있어야 하기 때문. 교양 삼아 공부했던 짧은 불교지식으로는 따라가기가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일본쪽 불교 이야기는 더 생소하니까요. 여태 교고쿠도 시리즈의 묘미였던 추젠지의 장광설이 스님들의 아무래도 좋은 장광설로 바뀐 탓에 더 읽기 힘들었답니다.
그리고 이런 어려운 불교 썰은 제껴두고서라도 미스테리 소설로서 완성도가 높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추리소설의 액기스인 트릭이라 할만한 트릭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죠. 장미의 이름이 신학과 추리소설을 결합시켜 종교적 썰을 잘 풀어낸 동시에 추리소설로서의 완성도도 높은 명작이었단 걸 생각해보면 철서의 우리는 실패한 작품. 그리고 스즈 이야기는 대체 왜 필요했나 생각도 듭니다. 다만 범인은 지금까지 본 교고쿠도 시리즈 중 제일 재밌었습니다. 설마 했던 굉장한 동기로 범행을 저지릅니다. 성장형 캐릭터였던 야마시타 경부보의 심경변화도 나름 볼만했고.
오컬트와 이성을 충돌시키는 미스테리 작가라 하면 역시 교고쿠 나츠히코와 미쓰다 신조가 있습니다. 둘 다 오컬트적인 사건을 추리라는 이성으로 해결하려는 작풍은 똑같지만 미쓰다는 그 뒤에 오컬트의 여지를 조금 남겨둔다는 차이가 있긴 합니다만. 여튼 여기서 굳이 미쓰다를 언급한 것은 비슷한 작풍을 가지고 있음에도 순수한 재미로서 미쓰다가 앞선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호러 텍스트도, 순간적인 몰입도도, 마지막에 다각도의 추리로 사건을 바라보는 재미 등등이 확실히 교고쿠도 시리즈보다 즐겁네요. 게다가 메타 구조까지 다룰 줄 아는 양반이라... 뭐 교고쿠 역시 항설백물어나 싫은 소설 등등이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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