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오노군을 계속 관찰하던 중에 전해진 것은── 아픔이 아니고, 추위였어.
마치 빛이 비치지 않는 감옥에 쭉 갇혀 사는 것 같아. 손끝부터 서서히 얼어가.
아픔이 아닌 추위라서 당신은 방심하고 있어. 사람이 설국에서 계속 살듯이. 그런 환경이니까 어쩔 수 없다며, 포기해.
하지만 사람은 추위로도 죽어」
실키즈의 서스펜스 추리어드벤처. 그림쟁이는 피요코. 글쟁이는 라이어에서 좀 구르다가 요즘은 실키즈에서 놀고 있는 우나바라 노조무.
이 양반이 요즘 추리서스펜스에 맛을 들렸는지 신소우노이즈처럼 이번에도 약간의 특수능력이 붙은 추리어드벤처 장르입니다. 신소우노이즈가 전반적으로 가벼운 사건들을(물론 전 체험판만 했습니다) 다뤘다면 버터플라이는 살인사건들을 추적하는 정통 싸이코미스테리 탐정물입니다. 이번에 붙은 능력은 죽음의 원인이 된 사건을 회상하는 스킬. 신소우노이즈 주인공의 능력이었던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보다는 치트성능이 떨어지는 능력이지만 덕분에 이쪽이 오히려 더 추리물다운 형태를 띄게 되었습니다.
야겜시장이 기울어가고 그나마 명줄을 이어가는 브랜드들도 대부분을 모에게를 내는 이 세태에서 이렇게 간혹 스토리로 승부 보려는 애들이 있긴 합니다. 누키게 전문 이미지가 강했던 실키즈가(사실 실키즈는 누키게로도 제법 재밌는 이야기를 만드는 곳이긴 했죠) 그 중 하나. 아페리이리아도 제법 호평이었고. 문제는 미스테리 장르에서도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느냐라고 한다면 솔직히 확신을 못했습니다. 지금은 마찰물이나 쳐만드고 있는 이노센트그레이가 그나마 야겜업계에서 미스테리장르를 가장 잘만드는 놈들이었는데 그쪽하고 비교하면 확실히 라이트한 느낌이에요. 물론 이노그레가 분위기만 잘만드고 스토리는 파쿠리질만 하던 애들이긴 했어도 그만큼 이쪽 업계에서 본격추리를 대가리 잘 굴려서 써낼 수 있는 양반들이 많지가 않습니다. 본격+SF를 잘 쓰던 칸노는 이미 저세상 사람이고.
서론은 집어치우고 결국 이 버터플라이 시커가 어땠냐면 의외로 괜찮았습니다. 공통루트까지는 그저 그랬는데 말이죠. 이겜은 미스테리 장르로서 추리의 수준이 그렇게 높은 편도 아니며 게임의 난이도도 굉장히 쉬운 편입니다. 추리 선택지를 고르기 전에 이미 썰을 다 풀어주기 때문에 설령 빡대가리라 하더라도 쉽게 정답을 고를 수 있습니다. 틀린다고 페널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면 회색 뇌세포를 굴리는 추리적 재미가 아닌 어느 구석에 좋은 인상을 받았냐면 바로 디테일한 부분입니다. 3개의 개별루트를 클리어 한 후 트루루트로 돌입하는 흔한 시나리오게 플롯을 취하고 있는 버터플라이 시커는 당연히 트루루트에서 모든 진실이 밝혀집니다. 그런데 이런 플롯을 가진 게임에서 쉽게 드러나는 문제가 트루루트에 몰빵한 나머지 모든 복선과 장치가 트루에 집중되어 있으며 개별루트는 그저 곁가지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 게임은 개별루트 구석구석에 던져둔 복선과 장치들을 트루에서 전부 회수하며 진실에 이르게 됩니다. 심지어 개별에서 그냥 흘려보냈던 별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마저 트루에서 써먹는 걸 보며 좀 놀랐습니다. 물론 트루 초반에서 던져놓은 정보도. 그리고 단순히 복선 회수율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개별루트에서 히로인의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면서도 결국 누나의 진실은 무엇이었는가 하는 궁금증을 끝까지 유지하게 만들면서 트루루트를 향한 의욕을 잃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중간중간 루트가 갈라지는 분기의 원인도 대충 만들지 않고 인과관계가 확실하게 짜여져 있습니다.
다만 개별루트 각각의 이야기가 뛰어났냐고 묻는다면 애매하네요. 노랭이 루트나 갈색루트는 쓸만했지만 안경 루트는 구렸습니다.
하야(노랭이)가 이벤트CG는 좀 불안정한 곳이 있지만 스탠딩CG는 멀쩡하고 뭣보다 캐릭터가 좋아서 의외로 좋은 히로인이었습니다. 아지산마의 연기도 생각 외로 좋았고. 그리고 분위기가 급무거워지는 루트이기도 합니다. 어디에 괴로운 감정을 부딪혀야 할 지, 정리할 수 없는 마음을 가지고 고통스러워하는 하야와 주인공의 심경을 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심적 묘사가 가장 좋았던 루트.
유이(갈색)루트 자체는 좀 미묘했지만 다른거보다 그냥 유이란 여편네의 압도적 히로인력이 좋았습니다. 주인공의 내면을 가장 잘 이해하고 그런 그를 구하기 위해 온갖 술수...를 다 부리고, 본스토리 전부터 이미 주인공한테 반해있으며, 심지어 얌전한 쌍판을 한 주제에 알고보면 육식계. 똘망하고 행동력도 있지만 결국 첫사랑 앞에서는 논리고 상식이고 뭐고 없어져서 울먹이는 모습도 좋았습니다. 주인공을 구하려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어쩌면 이쪽이 주인공이고 주인공군이 히로인같기도 하지만... 근데 웃긴 건 말이 공감능력이지 거의 독심술 레벨의 치트능력자입니다. 여튼 배드엔딩도 이쪽이 젤 재밌었고 히로인으로서도 2018년 최강 여편네 중 하나입니다.
치토세(안경)는 일단 좆경부터 벗자. 캐릭터도 취향 아니고 쿠스하라 목소리도 싫으며 개별루트도 젤 구린 년. 감정이 없다고 고민하는 모습도 전혀 이해가 안가고 사건 자체도 너무 형편좋게 돌아가는 느낌. 배드엔딩조차도 혼자 구림.
여튼 이런 개별루트 후에 이어지는 트루루트는 결국 진히로인인 누나(토오코)의 이야기. 어떻게 보면 별 대단한 진실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지만 딱 이정도 선의 이야기가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대단한 이야기로 끌고 갈려면 그만한 초전개도 각오해야 했던 게임들도 많았거든요. 다만 정말로 이해가 안가는 부분은 결국 안락의자탐정 토오코의 능력과 기이한 행동들은 무엇이었나 하는 점입니다. 능력 자체는 어느 정도 설명이 나오지만 그렇다고 그때까지 보여줬던 또라이 언동들은 밝혀진 진실만으로 설명하긴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외에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흑막의 동기와 친구캐릭터인 후카세. 솔직히 진실이 밝혀졌을 땐 에이 결국 이런 전개인가 하고 실망도 했습니다만 결국 그 동기는 대단한 이유가 아닌 '공포'라는 굉장히 인간적인 부분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후카세는 그냥 정보원이 되거나 분위기를 살려주는 친구캐릭터인가 했으나 주인공군에 대해서 품고 있던 감정과 그를 향한 행동들이 매우 공감가는 부분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런 아주 살짝 삐뚤어진 행동을 하곤 하죠. 결국 끝에 가서야 진짜 친구가 되고 호모호모한 모습도 좋았습니다. 트루루트에서 그의 활약과 이야기를 넣은 것이 어쩌면 이 게임의 베스트. 물론 걸어가다가 발견하다니 너무 형편좋은 전개지만.
하나 아쉬운 점은 시나리오게로서는 브금이 평범한 편입니다. 이노그레가 브금 하나는 정말 미친 놈들인데 말이죠. 그리고 히요코 그림은 모에게에 어울리는 그림입니다. 분위기랑 살짝 핀트가 안맞아서 이질감을 느낀 사람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전 그래도 괜찮았지만. 애당초 실키즈 채색은 업계 탑레벨이기 때문에 앵간한 그림쟁이도 다 버프 먹을 수 있습니다.
근데 에로가 1캐2섹이라서 꼬무룩 하네요. 이 큰 젖들을 어따 써먹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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