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둘 사이에는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시체 한 구가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스스로 죄가 없다고 믿는 자만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피고인, 무라타 가즈히코의 성격적 결함을 돌팔매질할 정도로 용기 있는 분이 이 법정에 한명이라도 있습니까?」
「피고인은 자신의 비밀이 공표될 바에야 무고한 횡령죄를 뒤집어쓰고 교도소에 가는 길을 바랐을 정도였습니다. 이 감정은 보통 사람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인생을, 인간성을 이해하시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인간성에 대한 이해가 있을 때 비로소 법률도, 재판도 진정한 가치를 가지는 것입니다」
「도조 야스코는 그 마음의 상처를 이해했습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자신을 사랑해준 여성에게 그가 품은 연정은 비록 형식적인 법률에서는 불륜이라 부르고 간통이라 부르지만, 순수 그 자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적어도 그의 마음은 틀림없이 모든 도덕률을 초월할 정도로 신성했습니다」
다카기 아키미쓰의 책은 문신살인사건 후로 두번째입니다. 추리소설로서 재미는 떨어질지 모르나 법정소설로서는 매우 높은 완성도.
먼저 추리 소설, 특히 본격파 시각으로 보면 사건의 트릭이나 반전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됩니다. 심지어 시작부터 이 재판의 결말을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의 진짜 가치는 9할 이상의 장면이 법정재판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대개 법정소설이라 하면 법정 밖에서 증거를 모으고 인물관계를 구축하여 정작 재판은 클라이막스에서 써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파계재판은 프롤로그 파트만 사건의 개요를 위해 재판을 하지 않고 따로 사건을 요약, 결국 나머지 페이지는 전부 변호사와 검사의 변론과 공격, 증인의 증언 등이 번갈아가며 진행되어 제법 높은 몰입도를 창조해냅니다. 재판의 고증 자체도 매우 잘되어있어서 정말이지 뛰어난 법정추리소설이라고 할 수 밖에 없네요. 물론 실제 재판에서 이루어지는 선서 등등은 소설로서의 재미를 위해 생략되기도 했습니다만.
그리고 또 하나 높이 사고 싶은 부분은 본격파적인 재미는 없음이 확실하지만 사회파적인 재미가 대단했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복잡하게 사건을 꼬아서 사회의 비극을 드러내는 방법을 피하고 거의 순전히 햐쿠타니 변호사의 변론만으로 높은 감정이입을 창출해냈습니다. 작중에서 대단히 휴머니즘 넘치는 변론이란 평가에 저도 동의합니다. 이 소설이 인물들 간의 대화가 빠르게 왔다갔다 하는 플롯이 아니고 등장인물들 간에 번갈아가며 길게 썰을 풀어내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으므로(재판이니까) 일종의 '연설'과 같은 모습이 되기 때문에 인간미 넘치는 대사들을 풀어내기 좋은 면도 있었죠.
결국 매우 훌륭한 법정재연과 뜨거운 변론 덕에 굉장히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소설입니다. 물론 실제 재판과 비교하면 살짝 연극풍의 모양새를 하고 있으나 소설로서의 재미를 위해 그 정도는 전혀 문제될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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