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어떤 의미에서는 예술이에요. 예, 술. 엄청난 충격이었어요. 죽음이란 걸 눈앞에 두고 인생관이 싹 바뀌었어요.
무대와 관객석을 구분 짓지 않는 장소에서 사람 하나가 너덜더덜해져서 살해당하는 거예요.
삶과 죽음을 나누는 건 커터 칼 하나였어요.
나였을지도 모르는 저 제물이 눈앞에서 갈기갈기 찢어져서 핏덩이가 되어 죽을 때 느끼는 그 한없는 우월감은 말도 못해요.
나는 오늘도 살아남았다, 내일부터 다시 적어도 한 달은 더 산다.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었어요.
자기 삶이 잔혹한 죽음과 서로 마주 보고 있다고 실감하는 그런 충족감…… 이었죠.
얼마나 멋지던지 세상이 넓게 보이더군요」
혼다 테쓰야의 히메카와 레이코 시리즈 1탄. 사고나서 3년쯤 된 책인데 내팽겨쳐두고 있다가 이제야 읽음.
경찰들이 주역인 소설치고는 제법 그로테스크하고 오락성이 강한 작품입니다. 원한이나 돈을 목적으로 한 살인이 아닌 삶을 느끼고 싶다는 등의 중2한 동기를 가진 싸이코범죄를 다룬 소설을 오랜만에 읽었더니 꽤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범인 두명이 서로 가치관이 정반대였다는 사실도 흥미로운 편입니다. 평생 삶을 느끼고 위를 봤던 자와 평생 죽음을 느끼고 아래를 봤던 범인의 충돌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지만 클라이맥스에서 이 충돌 때문에 범인들이 너무 쉽게 자멸해서 싱겁기도 했습니다. 레이코를 마코로 착각하는 전개도 어거지.
개인적으로 여자주인공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특히 싸움이나 경찰 등등 남성적 성향이 강한 장르에서 여자주인공을 내세운다면 그것만으로 흥미가 사라집니다. 그래서 이 책도 사고나서 몇년을 내팽겨쳐둔 것인데... 뭐 예상대로 여자주인공인 레이코에게는 전혀 관심이 안 갈 뿐더러 막판엔 다른 캐릭터들이 사건을 다 해결하니까 이 주인공의 존재가 결국 거슬렸습니다. 물론 그녀의 직감이 뛰어나서 수사의 초석이 다져지긴 했지만 여튼 경찰소설에 여자는 어울리 않는다 생각합니다.
반면에 다른 꼬츄경찰들 캐릭터는 좋았습니다. 이 작품의 진주인공이었던 카쓰마타가 특히 돋보이는 캐릭터. 정의감은 다 때려치고 효율적인 수사와 뒷공작, 눈에 보이지 않는 우정과 연대보다는 명확한 가치를 이용해서 수사에 투입하는 악덕형사의 모습은 레이코가 따라할 수 없는 이 작품의 진정한 히어로입니다. 그리고 사투리 팍팍 날려가며 옆에서 흥을 돋궈주는 이오카도 웃겼습니다. 자지도 크고. 사투리가 꽤나 찰지게 번역된 걸 보고 저도 일본어 사투리 번역을 해본 적이 있지만 역시 프로가 하는 번역은 다르구나 하고 느끼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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